블로그를 시작하며
난 개발자로 커리어 변경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40대 아저씨다.
아마 첫 줄을 읽고 이미 답답함을 느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조차도 누군가가 이런 소리를 하면 가망 없을텐데 하는 생각 먼저 들 것 같으니 말이다. 특히나 AI도 미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그것도 40대에 뛰어들겠다고? 나 자신도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나아가는 이유는 그저 ‘하고 싶어서’이다.
개발과의 인연
내가 처음 개발이란걸 해본 건 고등학생 때이다. 정확히는 2000년이었는데, 싸이월드 유행 이후 채림이 광고하던 마이홈, 나모 웹에디터, 드림위버, 슈퍼보드 게시판 등이 쏟아져 나오며 홈페이지 만들기 붐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나도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면서 내가 원하는대로 여기저기 변경하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하게 된게 계기였다. 물론 그땐 아무런 개념도 없었으니까 그저 필요한 기능이나 CSS를 찾아서 HTML에 붙여넣거나 웹에디터로 만들거나 이런 수준이었다.
처음 희열을 느꼈던 일은 몇 시간동안 슈퍼보드 게시판을 홈페이지에 연결하려고 애쓰다가 성공했던 거였는데 그 땐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모른다. 이런 일들이 꽤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어렸을 때라서 이걸 직업으로 삼아야겠다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런 ‘산업분야’에 대한 개념이라던가 인터넷의 미래 이런건 상상할 수도 정보를 접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학교 생활 하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그러다 20대 초반, 서점에 갔다가 C++ 서적이 눈에 들어왔다. 왜인지 모르게 항상 개발, 프로그래밍 쪽엔 자꾸 흥미를 가졌다.(그렇다고 흥미를 가지고 미친듯이 파고들었다거나 잘 했다거나 하는건 아니다..)
충동적으로 책을 샀지만 역시나,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또 금세 흥미를 잃었다. 개인적으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탓을 하고 싶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군대에 갔다 왔고, 집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생이 또 흘러갔다.
30대 초반, 스페인으로 건너왔다. 한 분야에 대단한 능력이 없었던 나는 외노자로서 또 몸 쓰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인터넷에서 vscode에 알록달록 써있는 코드 사진을 보고 난 후 또 개발에 대한 관심이 스멀스멀 피어나게 되었다. 마침 지역 교육센터에서 국비 지원으로 7개월간 웹개발 수업이 있어서 지원했다. 거기서 html, css, js, php를 배웠는데 정말정말 기초적인 내용만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데가 없었다. 그럼에도 수업 들었던 사람들 중 90%는 종강 때까지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없었다.(!)
얼마 후 코로나 시즌이 왔고 개발자 취업 붐?이 왔었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난 그 당시 스페인어 회화가 처참했기 때문에 자신감도 없었다. 영어를 매우 잘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튼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도 없었기 때문에 70여 군데에 이력서를 보내봤지만 역시 아무 소득이 없었다. 판데믹 이후 어찌저찌 동네에 있는 공장에 취업해서 몇 년을 보내왔고, 40대가 되고 말았다.
내가 했던 실수
판데믹 이전, 국비지원 수업에 다니던 즈음에 난 공부 한답시고 유튜브에서 튜토리얼을 따라하거나 Udemy 강의를 보곤 했다. 당시의 나는 열심히 공부한다고 생각했으나 나도 모르게 ‘튜토리얼 늪’에 빠져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강의를 틀어놓고 따라서 하다보면 나는 배우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그냥 따라서 하고 있을 뿐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배우는건 없다. 그마저도 강의와 패키지 버전이 안 맞아서 뭔가 잘 안 되거나 똑같이 따라했어도 에러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혼자서 구글링 해가며 낑낑대다가(AI가 나오기 전이었다) 해결하지 못하면 그냥 강의만 보고 흐름만 파악하려고 했었다. 나중에 나 혼자 해봐야지. 이러면서.
그러고 나서 혼자 뭔가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프로젝트 폴더를 만들고 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지?’ 하고 머리가 하얘지면서 뭘 혼자서 하질 못했다. 그럼 배움이 부족한가? 싶어서 또 튜토리얼을 보게 되고 그렇게 악순환이 되었다. 이걸 ‘임포스터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튜토리얼 늪과 임포스터 증후군, 이게 독학하는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적이라고 한다. 내가 몸소 당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요새는 AI한테 힌트를 달라고 하고 내가 스스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방식으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것도 부작용이 있는데, 점점 귀찮아서 ‘해줘’가 늘고 있어서 경계하려고 하고 있다)
마음을 다잡고..
아무래도 이력서에 국비지원과 Udemy만 있다보니 영 신뢰가 없는 것 같아서 학위를 따기로 했다. 이 나이에 4년제를 다니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해서 2년제 전문학사를 선택했다. 일하는 공장 바로 옆 블록에 교육기관이 있어서 거기에 등록했다. 같은 학위를 주는 공교육 기관을 먼저 노렸지만 준비해야 할 서류가 더 까다로웠고 무료인만큼 경쟁이 엄청나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여튼 온라인 수업이라고 광고를 했지만 사람들이 오프라인 수업을 더 선호해서 오프라인으로 바꿨다고 했다.. 다행히 오후 수업이라서 일 끝나고 바로 오면 시간이 맞았지만 2년 간은 새벽에 집을 나와서 밤 늦게 들어가는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지금은 졸업 전 실습 기간을 보내고 있다. 실습 이것도 할 얘기가 있는데 이건 잠시 후에 하도록 하겠다.
수업 2년차부터는 아빠가 되었다. 아기까지 생기면 상황이 더 힘들어질걸 알긴 했지만 아내가 결혼 후 무려 10년을 미뤄오다가 이제야 갖고 싶다고 했던 터라 아무튼 그렇게 됐다.
일 끝나고 실습하러 가야 되는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지난 2년간 내 인생에서 최고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40대가 되니까 체력도 체력이었고 공장에서 육체노동을 하고 나서 끼니도 인스턴트 등으로 때우면서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공부하고, 밤에도 몇 번씩 깨서 깨서 우는 아이 달래고 주말엔 일 하면서(투잡이다.. 원격근무라서 다행이지만) 육아까지 하느라 커피를 물처럼 마시고 비타민C를 사탕처럼 먹으면서 버텼다.
수업도 Udemy에서 6개월이면 다 배울걸 2년 동안 야금야금 얕게 배운 것 같고 딱히 지식이 확 늘었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지만, 해외에서 학교 다니고 공부해보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은 이뤘으니 성취감을 느낀다. 실습기간도 잘 보내고.. 취업에 성공해서 타이틀을 바꿀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기타: 실습에 관해서
학교에서 연계해주는 회사들이 보통 9시-17시 또는 7시-15시 근무를 하다보니 나랑은 시간이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교수가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서 실습하게 되었다.
국비지원 수업에 다녔을 때도 내 성적이 상위권이라 날 좋게 본 강사가 먼저 자기 회사에서 실습하지 않겠냐고 제의했고 난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 수락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탓에 이번에도 교수 밑에서 실습하는게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도 있는데 본업을 그만두고 올인할 수는 없는 일.
역시나. ‘이런 이런 앱 하나 만들어 봐’ 하고 할일 하나 던져준 다음 아무런 터치가 없다 ㅎㅎ;
예전과 다른 점은 AI한테 물어보면서 하나하나 배울 수 있다는 것. 하다보니 난 모바일 앱보다는 웹쪽이 더 취향에 맞는 것 같다고 느끼는 중이다.
다른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회사에 따라 뭔가를 적극적으로 시키는 곳도 있고, 나처럼 방치하는 곳도 있었다. 실습이란게 다 이런식이긴 하지만, 실습이 가장 큰 취업의 기회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안타깝기도 하다. 내 아내의 경우에도 실습하던 곳에서 곧바로 채용한 케이스다. 그래서 나도 이런걸 기대했지만 아쉽게 됐다.
아무리 유럽이 한국보다 나이를 덜 본다고 해도 이 분야에서 40대 주니어는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건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실습이 끝난 후 솔직히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큰 기대는 안 하고 있다) 이 블로그에 계속해서 도전기, 성장기를 기록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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